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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이와 가볼만한 곳_3.1절을 맞아 다녀 온 서대문형무소역사관

by 사건의시작 2023. 2. 28.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한국사에 관심이 많아졌다. 그중 가장 아픈 역사인 일제강점기에 가장 관심이 높다. 최근 개봉한 안중근의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영웅을 보고 대성통곡을 하던 아이는 우리나라 독립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안중근 의사이며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안중근 의사를 꼭 만나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일제감점기 역사가 남아있는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했다. 서대문형무소는 일제강점기에 한국인에 대한 억압과 처벌의 장소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고 순국한 가슴 아픈 역사가 남아있는 곳이다. 곧  다 올 3.1절을 맞아 서대문형무소를 다녀왔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주소:  우) 03732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현저동 101번지)
전화: 02) 360-8590~1
FAX: 02) 3639752
홈페이지: https://sphh.sscmc.or.kr/
관람시간
여름철 (3월~10월) 09:30~18:00
겨울철 (11월~2월) 09:30~17:00
정기휴관 매주 월요일 (공휴일인 경우 그다음 날), 1월 1일, 설날, 추석날

입장료
어른 개인(3,000원) 단체(2,400원) 비고(19세 이상~64세 이하)
청소년 개인(1,500원) 단체(1,200원) 비고(13세 이상~18세 이하)
어린이 개인(1,000원) 단체(800원) 비고(7세 이상~12세 이하)
군인 개인(1,500원) 단체(1,200원) 비고(병장 이하의 군인_군복착용)
경로자 우대 개인 (무료) 단체(무료) 비고(64세 이상)
유아 개인(무료) 단체(무료) 비고(6세 이하)
장애인국가보훈대상자 개인(무료) 단체(무료)
*단체관람객 기준 인원 : 20명
*서대문구 거주 주민. 관내학교 50% 할인

교통편
지하철 : 3호선 독립문역 5번 출구
버스 : 독립문정류장 하차 
(간선)파랑 : 701, 702A, 702B, 704, 705, 708, 752
(지선)초록 : 7019,7021, 7737, 7052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10월 10일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으로 개소되어 1945년 해방까지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된 식민지 근대 감옥이다. 해방 이후에도 1987년까지 서울구치소로 사용되었고 민주화 운동을 하던 인사들이 수감되면서 근현대사의 아픔을 안고 있는 공간이다. 

 

1908년 10월 19일 경성감옥 개소 ➔ 1912년 9월 3일 서대문감옥 ➔ 1923년 5월 5일 서대문형무소 ➔ 1945년 11월 21일 서울형무소 ➔ 1961년  12월 23일 서울교도소 ➔ 1967년 7월 7일 서울구치소 ➔ 1998년 11월 5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개관

 

1998년 서대문형무소는 과거의 역사를 교훈 삼고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가의 자유와 평화를 향한 신념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역사관으로 개관되었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입장하면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보안과청사 건물로 지금은 1층과 2층 모두 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다. 보안과청사는 서대문형무소를 관리하기 위한 간수들이 업무를 보던 청사 건물로 1923년 건축되었다. 현재는 형무소역사실, 영상실, 민족저항실 1, 민족저항실 2, 민족저항실 3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시관 1층 형무소역사실에서는 사법제도의 도입과 서대문형무소를 비롯한 전국 감옥의 설치와 확장, 1987년 서울구치소로 이전 후 복원 과정 및 기록 영상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 2층에는 민족 저항실 이루어져 있는데 대한 제국 말기 위병부터 1919년 3.1 운동까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항일 독립 운동가와 관련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민족저항실 2는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사상범들의 수형기록카드 약 4,000장이 전시되어 그들을 기억하며 추모하는 공간이다. 수형기록카드 중에는 젊은 여성들과 어린아이들도 볼 수 있다. 이 기록만 보아도 얼마나 무차별하게 우리 민족을 억압하고 아프게 했는지 짐작할 수 있어 가슴이 아프고 무거운 공기가 흐르는 공간으로 느껴졌다. 민족저항실 3에는 1920년대부터 1945년 해방까지 서대문형무소와 관련된 항일 독립운동과 사형장 지하 시신 수습실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춥고 습한 기운이 느껴졌던 전시관 지하에는 보안과청사 지하로 서대문형무소에  입감 되어 신체를 조사받고 대기했던 곳이다. 바로 옆 취조실에서는 수감자들을 취조했던 공간으로 취조 과정에서 자행된 고문과 생족 애국지사들의 욕성 증언이 흘러나와 더 가슴 아픈 공간이었다. 더 잔인했던 사실은 취조실에서 고문을 받던 수감자들의 비명소리가 바로 옆 조사실에 대기하던 대기자들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치도록 의도하였다는 것이다. 손톱 찌르기 고문, 물고문, 벽관고문, 상자고문 등 잔인한 고문들의 흔적을 볼 수 있으며 체험도 가능하다.

 

중앙사 건물로 들어서면 간수사무소와 형무소의 의식주를 볼 수 있는 공간이 나오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틀밥(가다 밥)이었다. 밥그릇 안에 가다를 넣어 밥의 양을 차별화하여 배급하였는데 1등급에서 10등급까지 깊이가 다른 원형 틀에 밥을 찍어 배급했다. 실제로는 대부분 10등급의 밥을 먹었고 그나마 배급 받은 밥 안에는 모래가 가득 있었다고 한다. 수감자를 가두는 제10.11.12 옥사는 방사형으로 연결하여 옥사 전체를 한눈에 감시할 수 있는 파놉티콘 구조로 되어있다. 

파놉티콘의 구조는 영국의 법학자인 제레미 벤담이 제안한 일종의 감옥 건축 양식으로 소수의 감시자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감시할 수 있는 형태로 시선의 불평등이 일어나는 구조이다.  간수가 자리한 부채골 모양의 중앙은 조명을 어둡게 하고 옥사 복도는 환하게 밝혀 잠을 자는 동안도 빛에 의해 고통받고 감시를 받았다. 이 옥사는 여름에는 더운 기운을 겨울에는 추운 공기를 그대로 받게 끔 설계되었다. 1평 남짓의 감옥에는 50명 이상의 수감자들을 수감했고 그 안에서 서로 몸을 겹쳐가며 잠을 청하였다. 수감자들이 실제로 투옥되었던 옥사에는 건물 자체에 슬픔이 짙게 배어 있는 듯하였다.

 

옥사 건물을 나오면 공작사 건물이 보이는데 이곳은 수감자들이 노역을 했던 공장 건물이다. 2층 벽돌 구조로 총 8개의 방이 있었으며 일제가 수감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던 기록들과 군수용품을 생산했던 기록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그 옆으로 한센병사가 자리 잡고 있으며 수감자 중 한센병에 걸린 사람들을 격리 수용하던 옥사다. 추모공간을 지나면 두 갈래의 길이 나오는데 한쪽은 사형장 길이었다. 사형장 앞에는 커다란 미루나무가 있었고 그 나무는 통곡의 미루나무로 불리며 사형장 안을 들어가기 전 미루나무를 붙잡고 통곡을 하였던 가슴 아픈 현장을 짐작할 수 있었다. 현재 통곡의 미루나무는 오랜 수명으로 쓰러졌는데 그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기 위해 쓰러진 체로 보존되고 있으며 미루나무의 뿌리가 옆에 자라며 새로운 아기 미루나무가 올라온 것을 볼 수 있다.

통곡의 미루나무

사형이 집행되던 건물을 지나면 시구문이 나오는데 이 문은 사형 후 시신을 이동하는 통로로 외부와 연결된 비밀 통로 였다. 서대문형무소 중앙에는 격벽장이 자리 잡고 있으며 수감자들의 운동시설로 감시와 통제를 위해 격벽을 설치하고 파놉티콘 구조로 감시가 쉽게 만들어져 있다.

 

격벽장 맞은편 여옥사에는 여성들이 수감되어 있던 공간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려진 유관순 열사의 수감 장소이기도 하다. 서대문 형무소를 둘러싸고 있는 망루 감시탑은 10m의 감시탑으로 현재는 2기만 남아있으며 담장은 수감자들의 탈옥을 막기 위해 4m 높이로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우리나라의 가슴 아픈 역사이지만 꼭 알아야 하는 역사 이기도 하기에 3.1절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한다면 커다란 의미가 있을 것이다. 3.1절을 맞아 "서대문, 1919 그날의 함성" 기념행사도 예정되어 있으며 3.1절 당일에는 무료입장으로 독립운동 퍼포먼스,  역사 콘텐츠 체험부스등 다양한 행사들을 진행한다.

우리가 방문을 했을 때 청소년 도슨트들의 해설을 들을 수 있었는데 어찌나 대견스럽던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는 청소년 도슨트 아카데미도 진행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설명해 준 서대문형무소의 이야기는 더욱 의미가 있었고 더 많은 청소년들이 참여하여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고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