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브랜드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창업자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 이름으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오늘은 루이 비통을 만든 루이 비통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루이비통은 국내에서 #에루샤 에르메스, 샤넬과 함께 3대 명품 브랜드로 가치가 높고 인기가 많은 브랜드이다. 루이 비통 창시자 루이 비통은 1821년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목공 기술을 배웠고 돈을 벌기 위해 귀족들의 짐을 들어주던 짐꾼이었다. 14살이 된 루이 비통은 동경하던 파리로 떠났고 그곳에서 가방을 잘 만드는 무슈마레샬의 수습생으로 일하게 된다. 루이 비통은 섬세하고 특별한 기술로 명성을 떨치기 되었다. 그 당시 프랑스 귀족들은 무겁고 부피가 큰 나무상자에 옷을 넣어 이동하였고 그것을 본 루이 비통은 새로운 가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1854년 자신의 이름을 딴 가방가게를 내었다. 그리하여 기존 나무 상자의 단점을 보안해 특별한 목공 기술로 나무와 금속을 결합해 방수기능을 가진 캔버스를 이용해 트렁크를 제작하게 되는데 그 트렁크 '그레이 트리아농 캔버스'가 귀족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다. 그 이후로 루이 비통은 목적에 맞는 가방을 제작하였고 루이 비통의 가방이 인기가 많아지면서 입지가 굳건해졌다. 이후 1859년 파리 중심부 아니에르에 첫 번째 공방을 차리는데 그 공방은 지금까지도 장인 정신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1886년 루이 비통은 여행용 트렁크가 쉽게 강도들에게 표적이 되자 트렁크 안의 물건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자물쇠를 개발하여 트렁크에 접목시켰다. 루이 비통의 자물쇠는 오늘날까지도 응용해서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고 있다. 1888년 루이비통은 모조품에 대한 대응책으로 다미에 캔버스를 개발해 제품에 적용시켰다. 다미에는 프랑스어로 체크무늬를 의미하는 단어로 아들 조르주 비통과 함께 개발한 디자인이다. 베이지색과 갈색의 바둑판무늬에 규칙적인 간격으로 루이비통의 상표가 새겨져 있다. 1896년 모노그램 캔버스 도입 전까지 루이 비통을 대표했던 패턴으로 오늘날까지 다양하게 재해석되고 있다. 모노그램은 다미에 캔버스와 마찬가지로 모조품에 대한 차별화를 두기 위해 아들 조르주 비통이 개발한 디자인이다. 루이 비통의 이니셜 L과 V가 겹쳐있고 꽃과 별 문양이 교차되는 패턴의 디자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여행의 수단이 자동차로 바뀌자 트렁크보다 작은 실용적인 가방을 개발하는데 주력했고 이후 빠삐용백과 예삐라인을 선보이며 1978년 일본시장을 시작으로 아시아 시장까지 진출 매장을 개장했다. 루이 비통은 무엇보다도 품질과 내구성을 중요시 여겼고 루이비통 아들 조르쥬 비통은 모노그램 가방을 들고 사막을 횡단하며 내구성을 실험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가족 경영에 한계에 부딪친 루이 비통은 1987년 샴페인과 코냑 제조업체인 모에 헤네시와 합병하여 거대 럭셔리 기업 LVMH 그룹을 설립했다. 1997년 마크제이콥스가 루이 비통의 아트 디렉터로 합류하면서 브랜드의 정체성은 유지하면서 젊은 간각과 이미지를 접목해 의류, 신발, 주얼리 등으로 상품 영역을 확장했다.
루이 비통의 사명은 수준 높은
장인의 정신을 바탕으로
디자이너의 비전과 독창성으로
루이 비통의 우아함과
특별함을 구현하는 것이다.
루이 비통은 다양한 배경의 인재들을 양성하고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광범위한 견습 프로그램과 독자적인 아카이브를 보유하며 가죽 장인들을 육성에 힘쓰고 있다. 브랜드에 대한 가치를 높이고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통해 매년 새로운 이슈로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루이비통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현재는 과도한 상업화로 전통의 방식보다 품질이 뒤떨어진다는 의견도 나오지만 전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브랜드임은 분명하다.
최근 루이 비통은 기후변화에 대응하며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 55% 줄이겠다는 약속과 함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 노력도 함께 하고 있다. 특히 재활용되고 바이오 소싱 된 재료를 사용하며 생물 다양성도 보존하고 더 적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기후 노력에 앞장서는 브랜드임을 명시했다.